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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2008/12/30 00:29

팔레스타인의 유태인과 아랍인

이스라엘이 위치하고 있는 지금의 팔레스타인지역은 원래 유목민이던 유태인들이 이주해 오기 전에 여러 선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란 지명도 원래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팔레스티나족(구약성경의 블레셋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오랜 싸움 끝에 다른 부족들을 축출하고 다윗왕(BC1004-963)에 의해 통일왕국을 건설하였다.
이 왕국은 솔로몬왕(BC963-933) 때 전성기를 누렸으나 그의 사후 북부의 이스라엘왕국과 남부의 유태왕국으로 분열되었다가 각각 앗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 멸망당했다. 지금의 이스라엘 또는 유태라는 명칭은 바로 이 두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유태인들의 역사는 부침을 거듭하지만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가 팔레스타인지역을 정복함으로써 유태인들의 독립왕조는 완전히 소멸하였다.
유태인들은 바로 이 로마의 치하에서 큰 시련을 겪게 된다. 독특한 종교를 지닌 유태인들은 로마가 이교숭배를 강요하자 이에 대항하여 기원후 70년과 135년에 두차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는데, 로마는 철저한 유태인 말살정책으로 이에 대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태인의 다수는 몰살당하고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세계각처로 뿔뿔이 흩어져 기나긴 유랑의 생활로 들어서게 되었다.
한편 아라비아반도에서 주로 유목생활을 하던 아랍인들은 기원후 7세기에 마호멧이 전파한 이슬람교의 신앙 아래 통일국가를 건설한 후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여 불과 수십년 사이에 중동전역과 스페인에까지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팔레스타인지역도 이 시기에 아랍인의 영향권에 들어가 그 이후로는 줄곧 아랍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시온이즘(Zionism)-분쟁의 씨앗

세계각처로 흩어져 살게 된 유태인들은 어디에서건 자기들만의 독특한 공동생활을 유지해 현지인들과 융화되지 못하고 갈등을 겪었다. 그 가운데서도 유럽의 기독교국가에 정착한 유태인들은 '예수의 살해범'으로 심한 차별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태인들의 민족의식에 불이 붙은 것은 19세기말 유럽의 지식인들을 분노케 했던 드레퓌스사건을 계기로 시온이즘운동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프랑스군 장교였던 드레퓌스는 독일에 군사기밀을 넘겨주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무죄가 명백히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태인이라는 출신성분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여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신문의 기자로서 이 사건을 취재하던 테오도르 헤르즐이라는 유태인은 유럽인의 反유태의식이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절감하고 시온이즘운동을 제창했다.
시온은 고대 이스라엘왕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의 산성을 지칭하며, 시온이즘이란 단적으로 전세계의 유태인들이 시온으로 돌아가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이념이었다. 이 운동은 유태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특히 2차대전을 전후해서는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에 자극된 서구인들의 여론도 이를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유태인들은 속속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와 1918년까지 5만여명에 불과했던 팔레스타인의 유태인은 1948년에는 76만명에 달하게 되었다.
일종의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된 시온이즘 운동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게 될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비어 있는 황무지가 아니고 아랍인들이 수십대에 걸쳐 살아 온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1차대전 이후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영국은 초기에 유태인의 이주를 묵인하다가 현지 아랍인들과의 갈등이 점차 커지자 결국 이 문제를 국제연합(UN)에 상정하였다. 국제연합은 이를 받아 1947년 팔레스타인지역을 유태인지역과 아랍인지역으로 반씩 나누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네 차례의 중동전쟁

1948년 영국이 팔레스타인의 통치를 포기하고 물러가자 유태인들은 즉각적으로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했다. 이에 대해 아랍인들은 일제히 반발함으로써 제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6개국 연합의 아랍군대는 패배하였고 약 80만명의 아랍인난민이 발생하였다. 반면 이스라엘은 유엔의 분할안 보다 더 넓은 지역을 점령하여 오늘날까지 이를 기본영토로 삼고 있다.
이후에도 1956년, 1967년, 1973년에 다시 전쟁이 발발하였으나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아랍인들의 노력은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특히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어 6일만에 아랍의 대패로 끝난 1967년의 제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요르단강 서안지대(West Bank) 와 가자지구(Gaza Strip),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였다.
아랍인들이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연패를 한 이유는 무기와 전략 등의 군사적 요인 이외에도 각국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협조 부족 등 정치적 요인이 개재되어 있다. 과거 대제국을 건설했던 아랍민족은 현재 22개의 군소국가로 분열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 나름대로의 이해타산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편 네 차례의 전쟁과정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아랍난민들은 주위의 형제국가들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지자 196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결성하고 자체적인 영토회복 운동에 나섰다.
Posted by 돌망치